일제치하에서는 조선국권회복단 결성, 삼일운동 및 그 직후의 28인 사건,
그 후의 통영 민중사건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 3년여의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잠시 보성전문학교 교수, 학감으로 재직하시다가 다시 뜻을 세우고 주경야독 하신 끝에 47세의 만학도로서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시고 부산과 통영에서 개업하면서 우리민족 인권수호와 독립투사 변호에 진력하셨습니다.

광복 후에는 서울 고등 검찰청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건국의 초석을 쌓으셨습니다.

퇴관 후에는 삼일동지회 이사장을 맡으시고 삼일운동 비사를 발간하시면서 민족정신, 독립정신을 선양하셨습니다.

별세 하신 후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